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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이게 무엇이더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아니 한국 육상의 보배 임춘애 선수가 라면만 먹던 시절, 우리들의 여가시간을 짜릿하게 만들어 준 바로 그 뱀주사위놀이가 아니더냐?
놀이방법이 간단하면서도 그 재미가 오묘해 당시 초등학교에선 학년, 성별을 불문하고 이 놀이를 즐기지 않은 이가 없었으니, 그 명성은 오늘날 스타크래프트의 아성에 뒤지지 않는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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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 노는 방법을 되짚어보자.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수만큼 자신의 말을 이동해 마지막 100번째 칸에 먼저 도착한 자가 승리한다. 중간에 고속도로가 나오면 (쾌재를 부르며) 길을 따라 올라가고, 반대로 뱀 꼬리에 걸리면 (팔자려니 하고) '아가리'가 있는 아래로 내려오면 된다.
일부 우등생들은 자신들만의 룰을 만들었으니, 주사위가 1이 나오지 않는 한 첫 출발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정확히 100번째 칸에 도착하지 않고 그 수를 넘어설 경우엔 처음으로 돌아가는 가혹한 법칙을 적용하기도 했다. 심지어 뒤따르던 말이 앞 말이 있는 번호에 멈추면 앞 말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윳놀이 방식을 벤치마킹하기에 이르면서 그 재미는 배가 됐다.

·기원전 2세기께 인도서 시작

한때 국민놀이로까지 추앙받던 뱀주사위놀이가 알고보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하니, 이 알 수 없는 아쉬움은 그만큼 이 놀이에 대한 애정이 큰 때문이리라.
하긴 8등신 미녀 '메텔'의 파트너란 것만으로 많은 소년들의 부러움을 샀던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이름조차 '철이'가 아니라 '데츠로'였으니, 일일이 내 나라 것을 따져 무슨 의미가 있으랴. 굳이 따져보자면, 그 시절엔 '호돌이'와 '마루치 아라치' '태권브이'가 아니라면 일단 의심부터 했어야 했다. 그랬다간 동심만 애꿎게 멍든다.

좌우지간 서양에서 '뱀사다리게임(Snake & Ladder)'으로 불리는 이 놀이는 기원전 2세기경 천축땅(인도)에서 시작했다. 유혹과 타락의 속세를 벗어나 하늘 혹은 깨달음에 이르는 구도의 과정을 담았으니 바로 100번째 칸이 '열반(Nirvana)'이었다 한다. 그러던 것이 1892년 영국에 전해진 이래 전세계로 퍼져 나갔고 1943년 미국의 밀튼 브레들리가 처음으로 이를 상품화했다고 전해지지만, 거기까지는 내 알 바 아니다. 인터넷사이트 'BoardGameGeek'(www.boardgamegeek.com)에서 참고했으니 믿건 말건 알아서들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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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대신 고속도로 '토착화'

이 놀이는 그 이름 'Snake & Ladder'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착한 일을 하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나쁜 일을 하면 뱀에게 물려 내려오는 것이 특징.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사다리가 아닌 고속도로를 사용한 까닭에는 아주 고전적인 음모론이 숨어있었으니 그 전모는 다음과 같다.

시대는 1970년대 하고도 초반. 당시 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국가재정 낭비라는 비난여론에 부딪쳤고, 정부는 이 같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고속도로의 효용에 대한 홍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에 높으신 분들은 수일밤을 고민한 끝에 어린이들의 코묻은 놀이판에까지 '한방에 달려가는 고속도로'를 그려넣은 것.

아이고, 이 못 말릴 분들아. 오늘날 같으면 대운하를 그려넣자고 하시겠소.

·70~80년대 시대상 고스란히

굳이 고속도로의 음모론을 들지 않더라도 뱀주사위놀이판에 그려진 그림들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이를 되새겨 놀이에 임한다면 그 또한 놀이를 배로 즐기는 하나의 방안이리라.

뱀주사위놀이의 근본은 그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 '권선징악'. 그러다 보니 각각의 칸에 그려진 착한 일과 나쁜 일 속에는 동 시대와 사회질서에 부합하는 선악의 개념들이 숨어있다. 나아가 반공과 같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학습시키는 도구의 역할까지 했다고 하니, 놀이판 그림들을 하나하나 문교부에서 감수했다는 소문도 마냥 뜬소리만은 아니리라. X-파일이 미국 정부에만 있는 것은 아닐테다.

가장 큰 고속도로(보상)는 '간첩을 신고하는 것(20번→74번)'. 역시 '무찌르자 공산당'식 발상이라 할 수 있겠다. 무려 54개 칸을 훌쩍 뛰어올라간다. 실제 그 시절엔 간첩선 한 척만 발견하면 인생 펴는 줄 알았다. 간첩선이 로또보다 더 큰 인생역전의 기회였던 셈이다.

'불발탄을 가지고 놀다 다치는 경우(72번→50번)'도 지금의 어린이들이 보면 생뚱맞은 내용. '공부를 안하면 거지가 된다(28번→6번)'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교훈도 '뭐든지 하나만 잘하면 대학 간다'는 요즘의 교육관에 비춰보면 왠지 불편하다.

·논란 속 66번 그림 무슨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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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66번 그림. 이곳에서 뱀을 타고 내려오면 다름아닌 철창행이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어린이에게 옥살이라는 가혹한 형벌을 내린단 말인가? 그것도 가장 큰 뱀을 타고 52칸이나 내려왔다.

'뭐하는 모습인고?' 소년이 소녀의 가슴 아랫부분에 살며시 손을 뻗치고 있는 이 기묘한 그림은 당시 학원가의 큰 논란거리였다. 가장 유력한 2가지 설은 '도둑질'과 '성추행'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거다'라고 시원한 답변을 내리지 못했다. 모르는 게 없다던 표준전과에도 그 답은 나와있지 않았으니 가뜩이나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의 속이 어찌 타질 않았겠는가.
지금에 와서 '도둑질'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당시에는 '성추행'설이 동심을 자극했다.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울 땐 으레 혹세무민하는 게 약발이 잘 먹히는 법이리라.

이렇듯 뱀주사위놀이에 그려진 각각의 그림들은 당시 어린이들에게 선악을 구별하는 기준을 제시했던 것. 이 때문에 놀이의 필승 비결 또한 남다르다.
놀이판 좌측 상단 놀이법에 따르면 그 비결은 '언제나 착한 일만 하세요'라는데. 아니, 기껏 비결이라는 게 이따위라니.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게임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러나 그런 사정을 깨닫기엔 너무나도 순수한 시절이었으니, 아! 그립도다, 그 시절이여.